고령군 덕곡면 지사동 출신 박병련(65) 전 대구시 행정부시장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고위공직자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존칭을 무어라 써야할지 초보 기자인 필자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고령을 빛낸 자랑스러운 고향의 대선배라는 생각에서 ‘선배님’으로 부르기로 양해를 구했다.  만남의 장소는 강남의 어느 손두부집이었다.
고향 행사장에서 먼발치로 가끔 뵌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고 보니 솔직히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를 눈치 채신 듯 선배님께서 여유 있는 웃음과 친근한 매너로 얘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신다. 단정하신 외모에서 풍기는 60대 중반 노신사의 배려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용기를 가지고 궁금한 점을 물었다.                                                                대담/한석순 시민기자

▶요즈음의 근황과 고향에 얽힌 추억담을 들려주세요

요즘 국립박물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박물관대학원’을 다니고 있으며, 1주일에 4시간 씩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주례서는 게 마치 직업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학교 동기들이나 고향분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시작한 일이 이미 30회를 넘은 것 같습니다.
큰 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어서 매년 집사람과 1개월 동안 미국을 종주하며, 때론 지인들과 골프도 치고 가슴이 탁 트이는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고향을 자주 찾고 있습니다. 지금 고령 덕곡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은사님(81, 배장호 선생님)께서 계십니다.
아버님처럼 자주 찾아뵙고 면장님께 선생님을 잘 부탁드린다고 각별하게 당부 드리기도 합니다.
요즈음 학생들은 우리들 학창시절과는 엄청난 차이를 느낍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는다는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배워 요즈음 학생들과는 격세지감마저 느낍니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사제지간의 불미스런 사건을 보면 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잔뼈가 굵었던 고향을 항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이 있었기에 내가 대과없이 공직을 수행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향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뜻으로 매년 덕곡면 소재지 기관장들을 초대해서 식사대접으로 약간의 ‘고향세’를 치르고 있습니다.
공직생활을 마칠 무렵 어머니께서 고향에 계셔서 10여 년간 고향에서 살았었는데, 어머니가 안 계신 지금은 허전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읍내로 나와 포장마차에서 고향친구들과 술잔을 나누던 소중한 시간을 늘 잊지 못합니다. 어쨌든 고향은 이래저래 잊을 수가 없나봅니다. 고향은 어머님의 품속 같다고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말입니다.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고령중학교 시절이 가장 추억이 많았던 때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령중학교 교가는 애틋한 추억이 묻어나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는 중학교 교가를 3절까지 부르고나면 기분이 전환됨을 때때로 느낍니다. 공직을 마치고 중학교 동창회장을 맡았을 때도 행사 때마다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서 교가를 3절까지 부르곤 했습니다.

▶젊은 시절 꿈과 공직 떠난 후 정치입문 유혹은 없었습니까?

나의 청년시절의 꿈은 문학도였지만, 문학하는 사람은 배가 고프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 생각은 접고 저널리스트(언론인)로 방향을 전환 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당시의 사회분위기로 좀 더 안정적인 공무원의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30년간 몸담았던 관직을 떠나 2003년 경기도 김포에 제2 삶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정치 입문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수와 운명, 그리고 순리를 거역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남을 위한 숭고한 길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순리를 거스를 수 있을지 몰라도, 아무리 탐나고 좋아보여도 내가 목표로 하는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입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공천을 주겠다는 몇 번의 기회도 있었지만, 나는 관료의 길을 고수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당시에 고령 달성 보궐선거에 공천을 권유 받았으나 거절했는데, 그 자리에 결국 현 박근혜 대통령이 공천되어 당선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박대통령이 있게 된 계기가 된 셈이지요.

▶고향발전에 대한 조언이 있으시다면?

나는 고향인 고령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대가야의 문화를 재조명하고 아직도 드러나지 않는 문화재를 시급히 발굴해야 된다고 전직 단체장에게 조언도 했습니다.
역대 자치단체장들의 노력으로 비록 작은 군이지만 이제는 전국에 명성이 많이 알려져 마음이 뿌듯합니다. 자화자찬 같지만 대구부시장 시절 고령을 너무 챙긴다고 중앙부처 공직자로부터 충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중소도시 어디를 가나 인구 감소가 걱정거리입니다.
고령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10년 후면 고령군도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인구 감소가 군(郡) 존립마저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구가 군세를 측정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훗날 고령이 대구시나 구미시 가운데 어디로 붙어야 유리할지를 가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500년 이상 번성했던 대가야국의 도읍지인 고령이 자칫하면 지도에서 사라지는 위기감을 느끼는 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고령을 고향으로 둔 출향인 등 모든 고령인이 함께 힘을 모아 고민할 때입니다.
‘역사가 망하는 게 가장 슬픈일’이라는 것을 명심할 때입니다.
올해로 아홉 번째 치르는 대가야체험축제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우수축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룬 저력으로 고령을 발전시켜 나기를 희망해 봅니다.
고령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나갈 영속성, 지속 가능하도록 댓돌 하나라도 놓겠다는 군민들의 마음가짐이 있다면 희망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지금도 짬짬이 시간 내어 친구나 교수들을 고령에 데리고 가서 역사 관광도 시키면서 고령을 알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민간 홍보요원 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고향을 지키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재경고령군향우회가 역대 회장님들의 노력으로 지금 잘 되고 있습니다.
고향발전이 어느 때보다 관심이 많은 것은 무척 다행한 일로 생각됩니다. 재경뿐만 아니라 출향인 모두가 고향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향인들이 실질적으로 고향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각종 선거의 후유증이 고령도 만만치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분열은 파멸일 수도 있습니다. 단합만이 고령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합니다.
자랑스러운 대가야의 후예답게 우리들의 고향 고령을 함께 발전시켜 나갔으면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유난히 지역의 단합을 강조하셨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애연 여사 사이에 2남 1녀를 두어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장시간 초보 기자의 질문에 허심탄회하고 진솔하게 들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약력 및 경력덕곡 예동초등학교 졸업, 고령중학교 졸업(14회)경북고등학교 졸업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국방대학원 수료, 미국 콜로라도대학 경제연구소 22세에 행정고시 합격청송, 성주 군수 역임, 구미시장 역임제주도도청 기획관리실장경북도청 기획관리실장내무부과장, 총무처과장대구시 행정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