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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풍경’이 있는 강변 풍경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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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10.12  09: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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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란 말만 들으면 언제나 강변이 떠오른다. 죽죽 근심 없이 자라난 미루나무, 그 나무 우듬지에 지어진 까치집, 눈이 부시게 펼쳐진 금빛 백사장,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그 위를 꿈꾸듯 피어오르는 물안개, 창공을 나는 백로며 왜가리 떼……, 말 그대로 그림 같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정경이다. 거기서 왕버들이 빠져서는 왠지 쓸쓸해 보이고, 물오리 가족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어쩐지 삭막하게만 느껴진다. 그만큼 강변과 풍경은 서로 정서가 잘 어울리는 사이인가 한다. 풍경 가운데서는 강변 풍경이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다. 강변 풍경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고향 같은 정취가 담겨 있으며, 대금 소리 같은 깊고 그윽한 가락이 숨어 흐른다. 
특히나 이내 자욱한 해질녘의 그 아스라한 정경은 엷게 채색한 파스텔화를 연출해 낸다. 
어릴 적의 기억이 평생을 지배하기 때문인가 보다. ‘강변’ 하면 나는 으레 낙동강을 떠올린다. 예닐곱 살 조무래기였을 시절부터 눈에 익혀 왔던 곳이 낙동강인 까닭이다. 
지금도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리알 같은 강물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던 잉어 떼며 상앗대로 세월을 젓던 뱃사공의 모습이 확대경 속의 장면이 돼 눈앞에 선해 온다. 그 강의 기슭에, 몇 해 전 ‘강변풍경’이란 이름을 단 아담한 쉼터 하나가 문을 열었다. 싱그럽게 푸르른 수목들에 둘러싸여 한 마리 백로처럼 나부죽이 앉아 있는 한적한 전원카페이다. 
지그시 실눈을 내리뜨고 저 멀리 물줄기를 굽어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기기에 참 안성맞춤인 곳이다.
뒤로는 꿈꾸는 듯 펼쳐진 산, 앞으로는 굽이굽이 감돌아 흘러가는 강물, 그리고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고만고만한 그림들, 이런 정경이 빚어내는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한껏 운치를 더한다.
카페 주인은 한세상을 캔버스와 벗하며 흙처럼 소박하게 살아온 부부 화가이다. 따스한 가을날 오후의 잔광을 받으며 창가에 마주 앉아 화폭에 몰입해 있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저 불후의 명화 밀레의 ‘만종’을 떠올리게 하는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해 자연의 품에 안겨 졸고 있는 ‘강변풍경’은 이름 그대로 한 장면의 강변 풍경이 된다. 자연에 인공이 어우러졌으되 그다지 인공의 냄새가 느껴지지 아니하는 곳, 이따금 도회의 삭막한 시멘트 가루에 염증이 도질 때면 바람처럼 훌쩍 찾아가 지친 몸과 마음을 부리고픈 것은 바로 그런 까닭에서인지도 모르겠다.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장면에서는 질서며 위엄 따위는 느껴질지언정 따사로움 혹은 안온함 같은 분위기가 풍겨 나오지를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 평원이나 강원도의 메밀밭 풍경을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일대 장관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똑같은 것들이 일제히 목을 내밀면, 그 뭉쳐진 힘에 그만 위압당하고 만다.
식물의 경우는 그나마 덜할는지 모른다. 그것이 동물에, 특히 사람에 이르렀을 땐 중압감이 한층 가열苛烈해진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로 잰 듯 일사불란한 북한군의 열병 장면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 바둑판같은 절도에서 소름이 끼쳐 오고, 취주악대의 질서정연한 퍼레이드 광경에 눈길을 주고 있노라면 반듯하기는 할지언정 매운 바람살 같은 차가움으로 괜스레 주눅이 든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조화에서 이뤄지는가 싶다. 풍경 또한 어우러짐에서 멋스러움이 생겨나는 것 같다.
제아무리 예쁜 꽃도 혼자서는 풍경을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정물화에 지나지 아니할 뿐이다. 
장미꽃의 요염함도 다른 꽃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빛을 잃고 만다. 크고 작음과 높고 낮음, 가늘고 굵음과 둥글고 모남, 길고 짧음과 강하고 부드러움, 이 갖가지 요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움은 배가倍加된다. 그렇다. 조화의 멋, 이것이야말로 풍경이 지닌 본질적 속성이 아닌가 한다. 사람살이에서인들 무엇이 다를까. 생김생김이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몸이 뚱뚱한 사람과 빼빼 마른 사람, 육신이 성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늙은이……, 이렇게 서로서로 어우러져서야만 비로소 세상이라는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자연의 풍경은 조화주가 꾸며낸 구도 잘 짜여진 한 폭의 명화이다. 나 또한 그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림을 구성하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 내가 들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흩트려 놓는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 탓이 아니겠는가. 온통 새하얀 설경 장면에서 유독 혼자만 빨간 장미가 돼 은빛 세상을 망쳐 놓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그런 풍경을 연출해 내고 싶다. ‘강변풍경’이 강변의 풍경과 근사하게 조화를 이루듯, 있는 듯 없는 듯 주위와 동화되는 그런 존재이고 싶다. 풍경 가운데는 금세 지워지고 말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있는가 하면, 오래 뇌리에 간직될 인상 깊은 풍경도 있다. 길이길이 좋은 기억으로 아로새겨질 풍경이 있는가 하면, 두고두고 나쁜 기억으로 따라다닐 풍경도 있다.
어떤 풍경을 남길 것인가. 먼 훗날,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좋은 기억으로 머무를 그런 풍경이 돼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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