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문
오피니언기고
세상에 돈이 있어서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3.12.21  17:08:0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공방전」이라는 글이 있다. 고려 중기의 문사였던 서하 임춘林椿 선생이 돈을 의인화해 지은 가전체 작품이다. 여기서 ‘공방孔方’이란,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엽전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공방전」을 통해 돈이란 것이 인간의 삶에 필요해서 만들어져 쓰이지만, 바로 이 돈 때문에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다는 것을 우의적으로 그려 놓았다. 이처럼 돈을 글의 소재로 삼아 그 필요악적인 면을 경계한 걸 보면, 물론 지금보다야 훨씬 덜했겠지만 어쨌든 돈이 사람들의 삶에서 중차대한 관심사인 것은 예전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던 모양이다.
돈, 이것 참으로 좋은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이 말에 대해서 딴지를 걸지는 못할 줄 믿는다. 돈이 없으면 무엇보다 사람살이가 비참해진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만 보면 그 앞에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딸아이가 꼭 세 살 났을 때의 일로 기억의 곳간에 쟁여져 있다. 그해 설날 아침이었다. 아버지가 오종종한 손자 손녀들의 절을 받고는 세뱃돈을 주시는데, 손자들에게는 죽 만 원짜리가 건너갔으나 손녀인 딸아이에게만 유독 오천 원짜리가 쥐어졌다. 손자와 손녀의 차별이 아니라 나이 차를 감안한 당신 나름의 배분이었던 게다. 
한데, 여기서 그만 생각지도 못한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던 그 아이가, 받은 세뱃돈을 도로 제 할아버지 턱밑으로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오냐, 그래 할아버지한테 맡겨 놓으려고?” 하시며 거두어들이려 하자, 딸아이의 태도가 가관이었다. 손가락질로 자꾸만 제 할아버지 지갑 속을 열어 보이라는 시늉을 하더니, 오천 원짜리는 물리고 기어이 만 원짜리를 받아들고는 그때서야 깡충깡충 토끼뜀을 하며 물러나는 것이었다. 딸아이의 맹랑한 행동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지만, 어쩌다 돈 이야기만 나오면 그 생각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한다. 삼척동자도 돈 좋은 줄은 아니 어른들 세계에서야 오죽하랴. 돈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일본 작가 로버트 기요사키가 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한동안 낙양의 지가를 올려놓았던 적이 있다. 돈의 절대적 권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집이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까닭은, 그만큼 요새 사람들이 돈에다 크게 관심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서가 아닌가 한다. 저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재주 여부에 따라 능력 있는 아빠와 무능한 아빠로 칼로 무 자르듯 갈라놓고 있다. 그 명쾌한 이분법적 구분에 시쳇말로 “잘 났어, 정말” 하면서 모자를 벗고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 존경이라도 표하고 싶어진다. 
‘부자 아빠는 곧 좋은 아빠요 가난한 아빠는 곧 나쁜 아빠’라는 식의 수학적 등식이 그대로 인문학적 등식으로 통하는 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그래서 누구 없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혈안이 돼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처절한 생존경쟁이다.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이 생존경쟁의 대열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날이 날마다 발버둥을 친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정신적 위축감은, 한시도 가만두지 아니하고 사람을 옥죄게 만든다. 그 언제쯤에나 이 물신에의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는지……. 
  물론 없이 사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고 했다. 가진 것 없으면 고개 숙임에 길들여지기 쉽고 악의 수렁으로 빠져들기가 십상이다. 속담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아니 할 놈 없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인간답게 살고 싶어도 배가 고프면 남의 집 담을 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게끔 돼 있다. 그 어떤 공포도 호주머니가 비어 있는 사람의 공포에는 미치지 못한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는. 그만큼 중하고 중한 것이 돈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어디까지나 정도 문제가 아닌가 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나지 않았거늘, 우리 스스로가 자청해서 돈의 노예가 돼 가고 있다. 돈 몇 푼을 위해 애꿎은 사람 해치는 것을 예사롭게 여기고, 돈 때문에 부모자식 간에도, 형제자매들 사이에도 다툼이 생겨 급기야 재판정까지 찾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 어떠한 가치들도 이 돈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 피보다 진한 것이 돈이요, 사랑 위에 군림하는 것이 또한 돈이다. 돈을 위해서는 우정마저도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린다. 예전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지만, 지금은 돈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그만큼 돈이 신격화해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우러러지는 세상이다. 이것이 참 살기 좋다고 떠벌려대는 이즈음의 풍토다. 이러한 현실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확연한 증거이며,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가 낳은 어두운 그림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주의가 하나도 좋을 게 없는 줄은 익히 알고 있음에도, 때론 그쪽 사람들은 내남없이 다 고만고만하게 살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마음의 병만큼은 우리보다 훨씬 덜 앓을 것 같다는 가당찮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나친 경쟁 심리가 우리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든다. 물론 이 경쟁 심리가 한편으론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신적 고통의 진원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난만이 질병이 아니라 부도 마찬가지로 질병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부자들 가운데는 두려움에 뿌리를 둔 끊임없는 탐욕의 노예인 경우가 대다수인 까닭이다. 그들의 내부에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큰 결핍감이 자리하기 쉽다. 그렇게 본다면 가난도, 부도 똑같이 불행인 셈이다. 
돈은 지남철처럼 사람을 끌어모으는 마력을 지녔다. 기류 따라 구름이 몰려다니듯, 돈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다닌다. 그러다가 돈이 흩어지면 사람들도 저절로 흩어진다. 염량세태炎涼世態, 인간 사회의 추악한 속성은 이 한 낱말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옛 선비들은 돈을 뒷간처럼 멀리한 채 세상의 아웃사이더로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갔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돈이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온갖 부정하고 요사스러운 일들 또한 이 돈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무엇이든 적당한 게 좋은 것이라는 세상사의 이치를 다시금 절절히 체감한다. 
올곧은 정신, 범할 수 없는 도덕성 하나로도 존경하고 또 존경받던 지난 시절의, 가진 것 없어 넉넉하던 때가 부럽다. 그 맑아서 참 인간다웠던 시절이 한없이 부럽다.

<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곽 흥 렬 수필가 전)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쌍림면 새마을회 봄맞이 화단 정비
쌍림면 새마을회 봄맞이 화단 정비고령군 환경과↔청도군 환경산림과 고향나무 나누어주기 행사…3,000그루
가장 많이 본 기사
1
장애인복지센터(고령분관) 유관기관 네트워크 간담회 실시
2
경북도, 인구감소지역대응위원회 인구감소 해법 모색
3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
4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대학입시 9명 합격 쾌거
5
외국인계절근로자 75명 올해 첫 입국
신문사소개윤리강령편집규약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시장4길 6 (우)40137  |  대표전화 : 054)955-9111  |  팩스 : 054)955-9112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경북 다 1008  |  발행인 : 김명숙  |  편집인 : 김명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명숙
Copyright 2011 고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o21@hanmail.net